한전이 올해 3분기 2조원 반짝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흑자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전기요금을 합리적으로 인상하는 것 이외에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11월8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또다시 자구책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세 가지다. 조직개편을 단행해 본사 조직 규모를 20% 감축하기로 했다. 인력도 줄인다. 신사업으로 인해 추가 인원이 필요함에도 증원을 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퇴직을 실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자산 매각 규모를 늘렸다.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한전 인재개발원과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사업 지분 전량을 매각한다. 또한 한전의 ICT 사업을 담당하는 한전KDN을 상장해 지분의 20%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한전은 이미 두 차례 자구책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비상경영체계를 선포하고 20조1000억원 규모 자구책을 제시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5조6000억원 규모 재무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더해 세 번째 자구책을 추가로 발표하며 매각 대상에 포함된 자산만 48개에 달하게 됐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한전은 재무적 한계치에 도달했다. 자구책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라고 말했다.
한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전이 발행한 채권(한전채) 액수가 급격히 커지며 금융시장에도 왜곡이 생겼다. 지난해 한전은 적자 3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전은 채권시장에서 약 31조원어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빌려왔다. 초우량채권(AAA 등급)인 한전채 발행이 늘어나자 채권시장에선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한전이 채권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보통의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결국 적자가 단순히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했고, 재무구조 정상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한전이 적자를 본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한전은 발전사업자에게 전기를 사와서 기업과 가정에 전기를 판매한다. 따라서 전기를 얼마에 사오는지(구입단가), 얼마에 파는지(판매단가)에 따라 한전의 경영 성과가 결정된다. 상식적인 기업이라면 판매단가는 구입단가보다 무조건 높아야 한다. 그러나 그 상식이 지켜지지 않아 한전은 엄청난 적자를 떠안게 됐다.
〈그림〉은 판매단가에서 구입단가를 뺀 차액을 월별로 나타낸 그래프다. 한전이 1킬로와트시(㎾h)의 전기를 팔 때마다 얼마나 이득 또는 손해를 봤는지 보여준다. 2021년 11월까지는 이 차액이 양의 값을 보였지만, 2021년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는 대부분 음의 값을 보였다. 한전에 따르면, 판매단가가 구입단가보다 최소 20원 이상 높아야 안정적인 흑자 달성이 가능하지만, 이 차액이 20원 이상 확대된 경우는 드물다.
누적된 적자를 빚으로 메우다 보니 이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지난해 한전이 1년 동안 지출한 이자비용은 2조8185억원이었다. 올해는 연간 이자비용이 4조3922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별로 계산해본다면 하루 120억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상품을 팔수록 적자를 보는 상황은 구입단가와 판매단가를 결정하는 원리가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 구입단가를 결정할 때는 대체로 시장원리가 적용된다. 예컨대 1㎾h를 각각 80원(A사), 100원(B사), 120원(C사)에 입찰한 세 LNG 발전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전은 시간대별 전기 소비량을 예측해 단가가 낮은 발전사부터 선택한다. 만약 오후 1시부터 2시 사이 예측된 전기 수요량이 2㎾h라면 A사와 B사가 선택된다. 이때 선택된 회사들 중 가장 단가가 높은 회사의 가격이 해당 시간대의 전력 도매가격(SMP)이 된다(SMP는 모든 발전사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 SMP를 기반으로 구입단가가 결정된다.
반면 판매단가를 결정할 때는 시장원리가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전기요금은 주무장관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협의해 결정한다. 물론 원가 수준과 한전의 재정 상태도 고려해 요금을 결정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요소가 함께 고려된다.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부터 정치적 고려까지 전기요금 결정에 개입한다.
경제 상황이 안정된 평시라면 이러한 불일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연료비와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는 이 불일치가 큰 후과를 불러온다. 판매가격을 올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데,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올리기는 더 어려워진다. 전기요금이 물가 수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을 위해 한전의 적자는 부차적인 일로 취급되곤 한다. 전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현 정부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적자 탈출 어려워
그러나 한전의 적자는 이제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해결 방안은 한 가지밖에 없다. 더 싸게 전기를 사와야 하고, 더 비싸게 전기를 팔아야 한다. 우선 전기를 더 싸게 사오기 위해 발전사들의 초과수익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본 예시를 살펴보면, 구입단가가 100원으로 결정되었을 때 발전비용이 80원인 기업은 ㎾h당 20원의 초과수익을 얻는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이 초과수익이 “기술혁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정산 방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에 고유가 시기에는 규제가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전기요금을 적절히 인상하는 것이다. 아무리 전기를 싸게 사온다 하더라도, 연료비와 환율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에 의해 구입단가는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가계와 기업이 그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면 한정된 요금을 두고 한전과 발전사가 손실을 서로 떠넘기는 형국이 된다.
정부 역시 이 필요성을 알기에 전기요금을 꾸준히 인상해왔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초부터 총 다섯 차례 올랐다. 올해 3분기 전기요금 인상에 연료비 하락 국면이 겹치며 한전은 영업이익 2조원 흑자를 기록했다. 10분기 만에 흑자 전환이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올해 ㎾h당 전기요금을 51.6원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1.1원만을 인상해 계획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11월8일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안은 대기업 등에 적용되는 산업용(을) 전기요금만 10.6원 인상하는 데 그쳤다. 이대로는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는커녕, 한전이 3분기 기록한 흑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연료비와 환율 모두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가 싸서 문제다’라는 말도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다. 올해 5월 발간된 한전의 2023년도판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산업용 판매단가는 주택용 판매단가를 추월했다. 결국 모든 전기 소비자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일 뿐 어느 한쪽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이 미뤄지는 동안 한전 내부에선 불만이 쌓이고 있다. 한전 적자의 주범은 정부인데, 책임은 한전이 대부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전국전력노조 김한홍 정책국장은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에 발표된 자구책은 결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인재개발원을 팔아도 또다시 대체 건물에 비용이 들어가고, 사업이 늘어나는데 인력을 감축하는 것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라면 노동자들도 함께 고통을 분담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선 동의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